마왕-부활[Revenge]

[부활] 마지막화 감상 -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헤니히 2005. 8. 19. 20:59


이제 감정을 추스리고 어느정도 기운을 좀 차렸습니다.
제대로 된 감상을 써야죠...
아시다시피 저는 하은이라는 인물을 너무도 사랑하지만 그가 진정 죽기를 바랬던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저번 포스팅에서도 밝혔다시피 괴롭고 최대한 비참하게 죽어서 시청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주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잊혀질 바에야 화끈하게 죽어서 이름을 남겼으면 하구요. 또 작품내에서도 불길한 복선이나 암시, 또 타이틀곡 '무죄'에서조차 비극적인 결말이 언뜻언뜻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전개상 더이상 강혁이가 행복해질 길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행복해 질 수 없다면 파멸로 끝을 내었으면 했지요.

물론 제가 하은이의 불행만을 바란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은이라는 인물을 사랑했던만큼 그의 행복을 바랬거든요. 하지만 하은이보다 '부활'이라는 작품에 대한 애정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 더없이 완벽한 결말을 바랬고, 복수가 복수를 낳고 파멸이 파멸을 낳아 하은의 죽음으로 끝없는 복수의 써클을 마감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 하은이 죽는 씬으로 마무리 되는가 싶었는데 마지막 반전으로 하은이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끝납니다. 저는 그 장면이 더없이 실망스러웠었습니다. 그런데 감정을 추스리고 하루 지난 오늘이 되어서야 그렇게 생각했던 제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답니다.

김지우작가를 우습게 봐서는 안된다는걸 알아버린거죠.

김지우 작가는 정말 대단하신분입니다. 대사하나하나에 중의적 의미를 부여하시고, 대사 하나하나에 인물의 감정과 심리를 거울같이 비춰주시던 분이었습니다. '복수'라는 주제에 있어서도 흐지부지 대충 용서하고 막을 내리는것이 아니고 정말로 끝까지 가버렸으니까요.

복수의 방법도 정말 대단한것이었습니다. 경찰서장은 비리때문에 경찰에 잡히고, 돈밖에 모르던 정상국회장은 결국 자신의 돈으로 망합니다. 침착하기 이를데 없는 냉혈한인 이태준의원(사기당한 사실이 드러나도 무섭게 침착했었던)도 자식만은 끔찍했었는데, 결국 그 자식때문에 망합니다. 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친구를 죽였던 강인철회장은 결국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을 떠났기 때문에 자살하고 맙니다. 이 얼마나 절묘하고 효과적인 복수입니까! 서로 죽고 죽이는 복수만이 하드한것이 아닙니다. 괴로움에 스스로 자멸하게 만드는 복수. 얼마나 무섭습니까?

하지만 그런 복수조차도 통쾌할수만은 없었습니다. 악당은 악당인 동시에 사람이었고, 그들의 죄는 아무사실도 모르는 자식들에게까지 미치게 되었으니까요. 게다가 복수가 너무나도 착착 잘 진행되고 있음에도 복수자 서하은의 마음은 어두워지고만 있었습니다.

복수와 맞바꿔 자신이 짊어져야했던 괴로움이 너무 컸습니다. 하은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가족의 모습을 봐야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못본척 무시해야만 하고, 신혁의 죽음을 어머니에게조차 숨겨야했고,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동생이 사랑했던 여자를 이용해서 진실을 파헤치게했고, 마치 자신과 닮은꼴인 착한 박희수에게 진실을 알리지 않은채 복수의 도구로 이용해야했습니다.

본래 성질이 착하디착한 서하은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며 그 고통을 알아준것은 천사장님 뿐이었지요. 하지만 천사장님은 그 고통을 나눠줄수도, 그사람을 멈춰줄 수도 없었습니다. 서하은은 천천히 망가져가고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자신의 어머니의 남편이자 동생의 아버지가 원수였음을 깨달았을때 서하은의 고통은 최고조에 이릅니다. 복수를 멈출수도 없고, 복수를 멈추지 않는다면 어머니와 여동생이 지옥같은 괴로움을 느끼게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은의 고통을 끝내게 할수 없다는것을 알고 있기에, 그의 죽음을 바랬습니다.

하지만 김지우 작가는 제 뒷통수를 때리더군요. 서하은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들은 응당의 벌을 받게 됐습니다. 자신들의 죄로 자멸해버린겁니다. 하지만 하은도 한가지 잘못을 범했는데, 그것은 마치 과거를 잃어버렸었던 자신과 꼭 닮은 착하고 순진한 사기꾼 박희수를 복수에 끌어들여버린것이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희수를 복수의 도구로 삼은것. 그리고 그 결과로 희수의 아버지를 뺴앗아버린겁니다. 복수는 복수를 낳게 된것이지요.

그래서 희수가 또 다른 복수심에 하은을 찔러버립니다. 하지만 놀라운것은 하은은 죽어가면서도 희수를 보호하기위해 칼에 묻은 지문을 닦는겁니다. 그리고 희수는 후회하며 스스로 자수를 하고 하은의 이름조차 발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둘다 삶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죽음으로 마감하지 않고도 복수의 마침표를 찍은겁니다. 죽음으로밖에 복수의 마침표를 찍을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제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지더군요.


용서와 화해.


잊고 있었나봅니다. 이 드라마의 제목은 '부활'이라는 사실을요. 처음부터 김지우 작가님은 하은이를 죽일 생각이 아니었던것입니다.

마지막 장면은 복수자 유강혁의 죽음과 동시에 서하은의 부활을 예고하는것이 아니었을까요. 원에서 끝은 다시 시작을 의미하듯이, 서하은의 죽음의 끝에는 서하은의 부활이 있었던 것 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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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가지 아쉬운점은 마지막화가 너무 짧았다는겁니다. 마지막화의 슬픔과 고통의 감정을 세세히 표현하기에 시간은 너무 짧아서 연출이 아쉬웠구요. 또 다른 주변인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와주지 않아서 섭섭했거든요. 재수 아저씨라던가, 신혁인줄로만 알았던 사람이 실은 자기를 이용한 강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강주라던가... 장형사님도 그렇고. 그들의 뒷 이야기가 듣고싶어요. DVD에는 이들의 이야기를 넣어주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휴... 정말 26화였으면 정말로 완벽한 드라마가 되었을지도 몰랐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게 아쉽고 슬픕니다. 이제 부활이 끝났으니... 전 이제 뭘보고 살까요......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