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절한 금자씨 - 안시와 금자는 닮았다?!
헤니히
2005. 9. 23. 16:42
친절한 금자씨는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의 차기작이었기에 제작과정 내내 언론의 관심을 받아왔다. 이러한 영화가 있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는 있었으나... 개봉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기회가 닿지 않아서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얼른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지경에 이르러서 바로 어제 실행에 옮겼다. 밥도 혼자서는 절대 먹지 않는 내가 어떻게 혼자 보러갈 생각을 했는지.
* 너무나 아름다운 OST
가장 큰 이유는 두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우연히 금자씨의 OST를 듣게 되어서이다. 올드보이때에도 음악이 좋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 금자씨의 OST는 정말로 필이 팍 하고 꽂혔달까? 올드보이때에는 음침한 왈츠더니 이번에는 무심한듯, 메마른듯 아름다운 금자씨와 바로크풍의 음악이 너무 판타스틱하게 어울리는 것이었다. 바이올린 선율은 여성적인 색채를 지녔으며, 또 한편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웠고, 부드럽고 유려한 멜로디는 매우 탐미적이면서도 박자에 어김없는 그 선율은 어쩐지 메마른듯한 붉은 마스카라의 금자씨를 쏙 빼닮았다.
그런데다가 내 마음을 확 사로잡은 것은 'Mareta, Mareta No'm Dace's Plorar (엄마, 엄마 날 울리지 말아요)'란 곡이었다. 제니의 자장가로 사용 된 그 곡은 정말 소름끼치게도 아름다웠다. 하루종일 몇번이고 돌려 들을 정도로 빠져들었다. 이런 곡들이 쓰인 영화라면 어떤 내용이든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 안시와 금자는 닮았다?
또 한가지 이유는 어쩐지 '금자'라는 캐릭터에 자꾸만 소녀혁명 우테나의 '안시'가 겹쳐보였기 때문이었다. 친절한 금자씨를 보기 전에 그녀의 이미지만으로 확실히 꼬집어 말 할 수 없었으므로 과연 그 실체는 어떤가 확인하고픈 목적도 있었던 것이다.
안시는 처음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불분명한 캐릭터였다. 어떤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형태로 보이기도 했으나, 듀얼리스트와의 약혼이 다른 듀얼리스트에게 깨어지면 아무렇지도 않게 냉담해지는것이다.
"안녕히, 사이온지 ... 선배?"
"너나 잘하세요."
약혼이 깨어지자 사이온지에게 보이는 태도나, 출소한 후 목사에게 보였던 금자의 태도에서 왠지 같은 느낌을 받지 않으셨는지? 안시와 금자는 매우 비슷한 면이 많다. 금자씨는 '친절한 금자씨'(성녀)와 '마녀'라는 별명이 있었고, 안시도 공주(성녀)와 마녀라는 두가지의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들을 마녀로 만든것은 다름아닌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죄책감'혹은 '죄책감의 근원' 때문이었다. 때문에 금자는 복수로 갚으려 했고, 안시는 백만개의 검에 찔리도록 되어있는것이었다.
안시는 당시 굉장히 놀라운 캐릭터였다. 뭇 애니메이션에서 그러하듯 '보여주기 위한' 여성캐릭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진의를 알 수없었고 한가지의 형태로 정형화되지 않았으며, 알 수 없기에 신비한 존재였으나, 그렇다고해서 신성한 존재는 더더욱 아니었다. 즉, 성녀도, 악녀도 아닌 존재였다. 즉, 이분화 되지 않은 존재였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원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모습을 비춰주는 존재였다. 순수함을 원하는 자에게는 그 순수를, 영원함을 원하는자에게는 영원을. 금자씨도 원하는 자에게는 그녀의 친절을 배풀었다. 그저 돌봐주길 원하는 사람을 아무 말 없이 돌봐주고, 몸이 아픈 자에게는 자신의 장기도 기꺼이 떼어주었다. 혹은 복수를 원하는 자에게는 기꺼이 무섭게 복수해주기도 한다.
또한 안시는 마녀였다. 그녀의 오빠이자 모든 사람의 구원자인 왕자를 구하기 위해 그녀의 힘으로 봉인해서 그것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대신 사게 되었다. 안시의 죄책감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모든이의 구원자를 빼앗은 그녀는 분명 왕자를 가둘 힘이 있는 마녀였다. 금자도 마녀였다. 자신의 아이를 위하여 다른 아이-원모를 죽인 죄를 덮어쓰고 진실을 밝히지 않았던 덕분에 다른 몇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희생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그것이 금자씨의 죄책감의 근원이기도 했다. 그리고 원래'마녀'의 칭호를 가지고 있던 여자를 살해함으로 그녀의 칭호를 물려받았다. 실제로 마녀의 힘을 물려받은 셈이다.
물론 안시와 금자는 완벽하게 비슷한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두 여자는 평면적인 악녀와는 다른 존재였다.
* 무조건적인 친절의 무서움
금자씨의 캐릭터가 감탄 할 만한 것은 복수를 위해 행했던 그녀의 독특한 방법이었다. 주위의 사람들에게 무조건 적인 '친절'을 베품으로서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게 만든것이다.
부끄럽지만 나도 자신이 모르는새에 그런 방법을 행하고 있었다. 사람을 만나고 대할 때 일단 무저건적으로 친절하게 대한다. 그리고 그 사람의 반응을 본다. 만약 그쪽도 똑같이 호응을 한다면 그와는 친해진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함에도 나에게 호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아예 그대로 관심을 끊는다. 나중에라도 내가 필요해진다고 해서 그때부터 나에게 친절을 배푼다 해도 이미 배는 떠난것이다. 나름대로 합리적이지 않은가?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방법을 택한 것 이다.
사람을 사역하는 방법은 이렇다. 일을 할 때 각 부분중 가장 성가시고 큰 일을 맡는다. 그렇게 하면 다른 조각들은 누구를 어떻게 시키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시킨다고 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금자씨도 알고 있었다. 무조건적인 친절을 베품으로 그 사람을 마음대로 사역할 수 있다는 것을 . 또한 그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마녀의 힘을 얻었다.
주위사람들을 억압하고 괴롭혀오던 '마녀'라 불리우는 여자 - 남편과 불륜을 저지른 여자를 살해해서 구워먹었다는 - 를 금자 자신의 손으로 해치움으로 억압하던 자에게서 수감자들을 해방시키고 또한 그 '마녀'의 칭호를 물려받았다. 그럼으로 마녀의 힘을 얻은 그녀의 무조건적인 친절의 무게는 가중되는 것이다. 그녀를 위해 무슨일이든 하고 싶어한 사람들은 진심이다. 하지만 그것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조금이라도 짐을 덜기 위한 그들의 몸부림이다. 자신이 받은 친절을 완전히 갚아야만 마녀 이금자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 복수, 그리고 '이금자' 라는 캐릭터
너무 큰 기대는 그만큼 실망도 큰 법이다. 전반부의 금자의 이미지는 정말로 훌륭한 것이었으나, 후반부의 금자는 갈 곳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어떤 작품이든 '재미(상업성과 직결되기도 한다)'를 중요시 여기는데, 그것은 시청자들의 감정을 완전히 이끌어 낼 수록 커진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설명이나 연출, 혹은 개그씬도 호흡을 끊게하거나 감정이입에 방해를 한다거나 한다면 과감하게 절제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어떤이들은 금자의 복수가 너무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금자의 복수는 나무랄데가 없는 것이었다. 희생된 아이들의 부모에게 직접 복수를 맡기는 것. 그 방법은 매우 옳은 일이었다. 그렇게 백선생을 몰아가는것이 그녀에게 가장 큰 복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친절한 금자씨'라는 영화가 코미디를 내포하고 있더라도 복수의 주체인 아이들의 부모마저 희화화 시킨것은 감독의 오버가 아닌가 싶다. 백선생을 베는데 피가 튀거나 무서워서 싫다느니, 돈을 넣어달라고 자신의 계좌번호를 남기는 것 따위. 인간의 부조리를 비꼬고 싶었으면 처음부터 비꼬며 나서던가! 아니면 '복수'의 이름을 들이대지 말았어야 했어요! 아니면 부모들의 태도때문에 그토록 오랜세월 복수를 준비해온 금자의 행위가 의미기 없어졌기때문에 금자를 불쌍하게 보이게 하려는 의도였습니까? 금자보다도 직접 아이를 잃은 그의 부모들의 원한이 더 클텐데 이도저도 아니게 부모의 복수가 희화화 되어서 상대적으로 금자의 복수는 괜찮은 방법이었음에도 미적지근 해 졌다. 그래서 감정이입하기가 더 힘들었다.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제니를 죽였어야했던게 아닐지; 그렇다면 금자의 원한이 더 사무치게 컸을텐데. 아이 잃은 부모들에게 밀리지 않았을텐데.
전반부에 금자의 원한에 대한 묘사가 부족했던만큼 후반부에서는 금자의 원한에대한 표현에 비중을 두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금자는 죄책감으로 풀이 죽은채 전반부의 '마녀'의 이미지를 버려버렸다. 죄책감을 표현한것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죄책감의 표현은 메마른 금자씨 이미지에 단 한 곳의 오아시스로 표현했어야 더 감정이 살았다는 것이다.
금자의 캐릭터는 복수의 천사이면서 '마녀'라는 캐릭터 성격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도록 유지했어야했는데 후반부에서 흐지부지 되었기 때문에 아깝고 또 실망하고, 화가나는것이다. 너무 뒤가 길어서 호흡이 끊어지고 감정이입이 덜 되는것이 아깝고, 또 아깝다.
즉, 조금만 절제했다면 정말 멋진 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흠이 없는 작품이 있을까만은 이건 정말 아까워서 환장할 지경이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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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설
1. 선곡 참 좋았다. 제니의 자장가 -'엄마,엄마 날 울리지 말아요.' 성장한 원모가 자신에게 재갈을 물리는 환영을 볼 정도로 금자는 복수가 끝난 후에도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니의 두부모양의 케이크와 자장가는 자신을 슬프게 하지 말라는 메세지였다. 그래서 비로소 금자는 자신을 그만 용서했다.
2. 한겨울의 금자의 물방울 드레스 - 체포당시에 입고있던 드레스를 그대로 출소할때도 입고있었던것은 그녀의 시간은 이미 체포당시 멈춰버렸다는 뜻이 아닐지... 복수를 행동에 옮김으로 그녀의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3.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케이크 - 마지막에 희생자 부모들과 나눠먹은 케이크는 아마도 백선생의 인육이었을것이다. 남편과 그 정부의 고기를 구워먹은 전대마녀의 대를 잇는것이었다.
4. 역시 유혈이 낭자한 복수보다 인간을 심리적으로 극단으로 몰아가는것이 더 잔인하게 생각된다. 부활의 영향때문인지... 백선생이 자신이 했던 행위가 무엇이었는지 잔인하게 깨달았어야 제대로 된 복수가 될텐데; 역시 '부활만세'다. 유혈이 튀지 않아도 인간을 극단으로 몰아세워 자기 스스로 무너져 후회하고 후회하며 비참하게 끝이 난다는게 얼마나 잔인해 보이는지...
5. 이왕 복수시리즈 손댄김에 '복수는 나의 것'을 얼른 봐야겠다. 복수 삼연작 중 최고로 치는 사람이 꽤 많은 모양이다.
6. 'Mareta, Mareta No'm Dace's Plorar (엄마, 엄마 날 울리지 말아요)' 조르디사발. 에스페리옹 레이블. 이 음반 사야할까 심각하게 고민중입니다. 이 곡 너무 좋아요! ;ㅁ;
7. 어헉; 본의 아니게 길어졌다. 영화에 대해 이렇게 길게 쓴적이 없던 것 같은데;;;; 하여간 글쏨씨 없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아직도 할 얘기가 남은 것 같은 찝찝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