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시리즈 마지막편.

고양이시리즈 2005. 3. 10. 23:07 Posted by 헤니히
식은땀이 흘렀다. 자신이 반마여서 잘되었다고 생각한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놀러가는데나 잠자는데 쓰였던 자신의 공간이 자신의 목숨을 구제해줄것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백색의 마왕은 갑자기 칼이 사라지자 놀란듯했다. 하지만 그가 어디로 숨었는지는 금방 알아챘다.

'칼 전하. 전하가 반마 였다는 사실을 미쳐 생각하지 못했군요. 하하!'

'......'

'그렇지만 다음은 없습니다. 공간쓰는 법이 익숙치 못하군요! 이래선 제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후 알수없는 칼날이 자신이 숨어있는 공간을 난도질 하기 시작했다. 칼날은 칼의 목덜미 옆을 지나가며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래서는 그 칼날에 맞는것은 시간문제다! 칼은 다시 멀찌감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럴땐 모습을 들어내는편이 낫다. 그래도 어디어 어떻게 공격해 들어올지는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 죽어줄듯 싶소?!'

칼은 그와 동맹을 맺었을 지언정 마음속 깊이 그를 의지하거나 믿어본 적은 없었다. 그는 아무나 자신에게 끌어들이되 진정한 자신은 보여준 적이 없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모조리 박해하고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동맹은 언젠가는 끝나게 되어있는것이다. 그것이 조금 당겨졌을 뿐이다.

그가 가진것은 최고사제의 신성력이다. 하지만 나이 많은 마왕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백색의 마왕! 당신은 내가 누군지 벌써 잊어버렸군!'

갑자기 뒤의 공간에서 검은색의 손과같은것이 마왕을 구속했다. 그것은 신성력 같은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마(魔)에 가까운 힘이었다. 신성한 최고사제의 눈은 평소의 신록의 숲과같은 초록색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아들과 같은 반인반마의 불길한 금색 눈동자였다.

'제길, 이걸로 영감들 귀에 다 들어가게 생겼구만!'

플래미히는 잊고있었던것이다. 칼의 전속 기관에서 어떤연구가 행해지고 있었는지. 마족들 사이에서 반인반마인 아이를 죽여 없애는 풍습이 있었던것은 자신들 마족을 능가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멘 데 루미네! 이 전쟁이 끝날때 까지 잘 쉬시오!'



마족들이 속속들이 자신의 공간에서 나와 정렬하기 시작했다. 해가 뜨면 전투는 시작될 것이다. 쉬익쉬익 숨쉬는 소리와 자신의 무기를 꺼내드는 소리만 들릴뿐이었다. 마족들의 무기는 검은색으로 된 금속인데, 그것을 '페카타(peccata)'라고 한다. '죄'라는 뜻이다. 네오는 자존심 강한 마족이 붙인 이름치고 묘하게 자조적인 이름이라고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태양은 마족들에게 있어서도 추앙받는 존재다. 태양이 강하면 강할 수록 더 강한 어둠을 낳기 때문이다. 태양으로 인해 생긴 어둠에 마족은 편히 쉴 수 있다고 한다. '태양이 만든 그림자에 감사하라'라는 격언은 아마 그것에서 나온 모양이다.

이윽고 태양이 지평선에서 떠올라 만물을 비추기 시작하자 마족들은 자신의 공간을 자신의 그림자안에 봉인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거머쥐고 네오가 어떤 지시를 내리기를 기다렸다. 네오의 페카타는 작은검은색편자를 여러게 이어붙여 만들어진 채찍이었다.

저쪽의 진영에도 서서히 태세를 갖춰갔다. 그러나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하지만 한사람, 그을린 피부에 붉은머리카락을 갈기처럼 휘날리며 걸어오는 이가 있었다. 그의 차림은 도통 전쟁에 나온 자의 차림이 아니었다. 바닥에 끌리는 흰색의 예복차림이었다. 사제, 그것도 고위의 사제로 보였다.

'네오님, 저자는!'

'그래, 난 알 수 있어. 저자는 루멘의 최고사제 칼 루멘 이다.'

칼이 걸어옴에 따라 네오의 뒤쪽에선 마족들이 스릉거리는 페카타를 들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가 걸어옴에따라 마족들은 더더욱 자신의 몸에 힘이 솟는것을 느꼈다. 네오는 손을들어 그들을 진정시켰다.

'아름답지 않은 여러분들 안녕하시오! 나는 루멘의 최고미인, 아니 최고사제 칼이라 하오.'

씨익 웃는 그의 하얗게 빛나는 치아가 반짝반짝 거렸다. 마치 연극배우처럼 손을 휘휘 휘저어 인사하는것이 영, 최고사제라고 보기에는 가벼워 미덥지 않아보였다. 하지만 그는 진짜로 루멘의 최고사제인것이다.

'당신들을 위해서 선물을 가져왔소.'

그의 그림자에서 알수 없는 점액질의 무언가가 일렁이는것 같더니 촉수가 튀어나와 어떤 고치의 형태를 이루었다. 이것은 분명...

'저것은 마족의 술수다. 자신의 공간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었어.'

마족들이 경악하기 시작했다. 마족? 마족이라니, 그런것 치고 마족의 기운은 전혀 감지되지 않았던것이다. 인간처럼. 그런데 그는 그림자에서 자신의 공간을 열어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마족의 술수이고 그남자는 루멘의 최고사제인것이다. 마족들은 그런 인물을 하나 더 알고있었다. 자신들의 우두머리인 마왕자 네오가 그런것이다. 하지만 고위마족일수록 기운을 감지하는것이 힘들기때문에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바... 반인반마인가!'

더욱더 술렁이고있었다. 반인반마는 태어나기도 무척 어렵다고 알고있는데 이세대에 두명이나 존재하고있는것이다! 게다가 사제가 되었다는 사례는 들어본적 도 없다.

칼이 불러낸 검은 고치를 살짝풀자, 15세가량 되어보이는 앳된 소년의 얼굴이 드러났다. 흰색의 털, 스트로베리 블론드의 빛나는 머리카락. 네오는 예전의 그를 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얼마전 거리를 떠돌아다닐때 보았던 저택의 화단에서 보았던 누군가를 닮은 소년. 자신은 그 소년을 보고 바로 기절했기 때문에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저것은 누구지.'

'아아, 누구긴 누구인가, 우리 성전군이 이만큼 당신들과 대적하게 도와준 인물이다. 인간이며, 마족이지. '

'그럴리 없다.'

그럴리 없다고 딱 잘라 말했지만 그 자신도 저 소년을 만났을때 정신을 잃지 않았던가. 그것은 그가 나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한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아버지는 마족을 배신하고 인간들편에 붙기 위해 아무말도 없이 사라진것인가.

'설마... 마왕이 우리를 배신했다고 하는거냐!'

웅성거림이 커졌다. 경악하는자들, 증오의 표정을 짓는자들...

'이럴줄 알았다. 애초에 인간을 마왕으로 세운것 부터가 잘못이었던거다!'

'우리를 배신하다니..'

'마왕이라고 불리우는자가 어떻게 그런짓을!'

칼은 살짝 웃음지었다. 고치를 풀어 마왕이라 불리우는 자를 저쪽진영에 내려놓았다. 이렇게 되면 마왕과 마왕자 둘을 믿지 못하는 마족진영이 제대로 돌아갈리가 없을것이다. 잘하면 마족진영 내에서 내란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 그렇게되면 성전군은 어렵지 않게 승리를 차지할 수가 있다. 분명 좋은 술수이긴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칼 자신도 그리 좋은 사정은 아니다. 어젯밤 자신이 마의 힘을 쓰는것을 영감들이 모두 눈치챘을테니까. 그나마 저쪽에서 사정을 알아채기전에 한발 앞서 도발하는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아름다운 흰피부와 대비되는 까만 머릿결을 가진 마왕자는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표정도 변하지 않았고, 동요하지도 않았다.




플래미히가 눈을 떴을때 처음으로 눈에 보인것은 새하얗게 부서져내려오는 햇빛이었다. 이렇게 뜨겁고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본것만같았다. 햇빛이 만들어주는 그림자에 감사하라고 하던가. 하지만 누워있는 자신은 어떤 그림자도 만들어내지 못했고 어떠한 그림자도 자신을 가려주지 않았다.

두번째로 귀에 들린것은 웅성거림이었다. 처음에는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점점 분명히 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마족들의 화난 음성이었다. 배신자 마왕을 처단하라, 저 인간의 혈통은 믿을 수 없다.. 이런소리들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누워있는 장소가 어딘지 파악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사제복을 입은 칼과 묵묵히 서있는 네로가 보였다.

그는 실패한것이다. 자신의 아들을 위해 세운 계획이 물거품이 된것과,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는것을 알았다. 이렇게 간다면 자신이나 자신의 아들이나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묵묵히 서있던 네오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의 아버지 백색의 마왕은 인간출신이었다. 어머니와의 사이에 내가 있었기 때문에 마왕으로 추대되었지만 후에 나를 핍박했다. 나의 목에 노예의 증거인 개목걸이를 채우고 있게한것이 그 증거이다. 이렇게 된이상 마족의 여왕이었던 내 어머니를 독살로 죽게한것이 지금의 백색의 마왕이 아니라고 할수가 있는가? 내 어머니에 대한일을 발설하는것을 금지한것도 그때문이 아닌가.'

마족들이 떠들던 소리가 돌연 숙연해진 분위기로 바뀌었다. 네이비는 눈을 크게뜨고 네오를 바라보았으나, 네오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백색의 마왕을 부정하며, 그에게 자리를 양도해줄것을 요구한다. 만약 응하지 않았을때에는 무력행사도 마다하지 않을것이다. 나를 따라 오지 않고 백색의 마왕편에 붙을 생각이 있으면 지금 이자리에서 말하라.'

'오오-.'

마족들은 다시금 크게 환호하며 모든 욕과 분노에 찬 언어를 백색의 마왕에게 퍼부었다. 백색의 마왕쪽에 선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단 한명, 마왕자의 오른팔이라고 불리우던 네이비만이 백색의 마왕의 곁에 섰을뿐이다.

'의외의 선택을 하는구나, 네이비.'

'네오님, 저는 알고있으니까요.'

네이비는 알수 없는 말을 하며 생긋 웃었다. 하지만 네오는 표정에 전혀 변화가 없었다. 플래미히는 누워서 계속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뿐이었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 구름한점 없이 파랗게 빛나는 하늘. 어느곳이라고 그때와 닮은것은 없었다. 지금은 햇빛이 뜨겁고, 눈의 차갑고 포근한 느낌은 없었다. 잿빛의 하늘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자꾸만 그날의 일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지나갔다.



<당신이 더 추워보여요.>

샤콘타넬.

샤콘타넬, 나도 알것같아.

<미워하지 않아.>

그래, 나도 알 것같아. 미워하고 증오할 필요조차 없다는것을. 정말로 나를 미워하고 있는지, 어떤지조차 알지 못해.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야... 정작 중요한것은 내 마음일 뿐이었어.



플래미히는 미동도 할 수 없었다. 움직일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인간과 마족이 구름떼처럼 몰려있는 전장의 한가운데였건만 너무도 고요했다. 눈을 감았다. 그녀가 웃고있는것처럼 느껴지는것은 왜일까.

' ... 넘겨주겠다. '

힘겹게 고개를 돌려 네오의 눈을 마주했다. 천천히 손을 뻗어 마치 아이를 쓰다듬듯 손을 움직였다. 네오는 페카타를 손에서 내려놓지 않은채 플래미히에게 다가갔다.



' 아가... 네로, 울지마라. 걱정하지 마라. 나는 널 미워하지 않는단다.'

플래미히는 손을 들어 네오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목에 걸려진 밸트목걸이를 천천히 풀러버렸다. 그리고 밸트를 쥔손을 가만히 떨어뜨렸다. 햇빛이 비춰 하얗게 빛나는 플래미히의 몸에서 검은빛이 흘러나와 정당한 후계자인 마왕자 네오에게 흘러들어갔다.

이제는 네오가 마왕인것이다.

그 자신의 마력의 결정체인 마족은 마력을 흡수당하거나 자신이 죽으면 마력이 흩어진다. 마왕의 승계는 그 전대의 마왕이 사망할 때 뿐이었다.





마왕 네오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자리에 꼼짝하지 않았다.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저 흰색의 소년의 몸을 으스러지게 잡았다가 놓을 뿐이었다. 그의 빛나는 금색의 눈은 빛을 잃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소년을 내려놓고 그는 걸어서 칼이 서있는 곳까지 갔다.

'처음볼 때 부터 알아보았어. 우리는 피는 나누지 않았지만 형제나 다름없지.'

'반인반마인 마왕과 루멘의 최고사제인가. 어째 균형이 잘맞는 짝이지 않은가? 누군가 정해준듯이 말이야. 우리가 싸우면 승패는 나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싸울 수 밖에 없겠지.'







마족과 인간의 싸움은 어이없게 종식되어버렸다. 마족은 전쟁중 마왕이 새로 바뀌었기때문에 혼란에 빠졌고, 어느때나 다름없이 즉위때엔 반대세력이 비집고 나왔기 때문에 전장에 그리 오래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루멘에서도 마찬가지로 루멘의 최고사제가 반인반마라는 사실이 알려져서 이단논쟁에 휘말렸다.

2차 성전을 주장하는 무리도 있었다. 큰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때 적을 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전쟁을 한다고 인간과 마족의 균형을 깨면 오히려 위험해질 것이라고 경고하는 학자도 있었다. 어둠은 빛이 있으면 자연히 생기는 법이다. 오히려 마족이 있음으로 해서 인간들이 서로 단결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현 마왕의 오른팔이라고 하던 네이비의 행방은 아직도 묘연하다. 전쟁 당시 백색의 마왕의 시신을 가지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즉위 후 사정은 급박하게 돌아갔으나 신뢰하던 친구이자 보좌관인 그가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흰눈이 내리는 플래미히 저택에는 긴 머리를 묶고 붉은 코트와 장갑을 끼고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하얀눈과 같은 빛깔의 털을 가지고 있었다. 추위로 볼과 코가 빨갛게 된 천진난만한 얼굴위로 흰눈송이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스트로베리 블론드의 머리칼은 이미눈 범벅이었다.

'플래미히 군?'

뒤에서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했다. 다가가서 어깨를 잡으니 그제서야 뒤를 돌아다본다. 소년은 너무도 천진스레 웃는다.

'에드 형!'

'플래미히군, 그렇게 눈장난을 오래하고 있으면 감기에 걸린다. 주치의인 나를 또 고생시키려고 그러는것은 아니지?'

'그럼요! 이것봐요! 제가 만든 눈사람이에요.'

'예쁘구나. 누구를 만든거니?'

'으음...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검은머리의 추워보이는 누나랑, 금색눈이 예쁜 아가에요.'


생긋웃는 미소와 함께 플래미히는 뒤에서 그 두 눈사람을 꼬옥 안았다. 그리고 그대로 굳은듯이 서있었다. 셋 위에 포근한 눈이 내려 따듯하게 덮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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